병명 모른 채 ‘13번 수술’‥현지 의료진 ‘치료 포기’
한국의술 도움 받아 ‘전결장형 무신경절증’ 확진
한국의술이 치료불가 진단이 내려진 세 살배기 몽골 아이를 살려내 화제다.(사진 선천성 거대결장증 자료)
이 남자아이의 이름은 볼더린(3세)이다.
볼더린은 몽골에서 어떤 병인지 모른 채 13번이나 수술 받았으나 낫지 않자 현지 의료진조차 치료를 포기해왔다.
지난 1월 볼더린의 부모는 혹시나 간절한 마음에 울란바토르 바얀주르크 주교좌성당 내 지난 2004년 가톨릭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김중호 신부가 세운 몽골 성모진료소를 찾았다가 현지 의료진이 서울성모병원 소아외과와 영상협진을 통해 볼더린의 정확한 병을 추정 진단함으로써 치료 가능성을 열었다.
볼더린은 할머니 엔크투야(여, 49세)씨와 함께 지난 5월 15일 내한, 수술 전 확진을 위해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아외과를 찾았다가 추정한 대로 이명덕 교수로부터 선천적 소장 기형 전결장형 무신경절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볼더린 진단에 ‘대장조영술 직장내압검사 조직검사’ 동원
환자 ‘5만 명 중 1명’‥증상 복부팽만, 구토, 변비 방치했다간 ‘생명위험’
이 병을 진단하기 위해선 대장조영술(colon study) 또는 직장내압검사(manometry), 조직검사가 동원된다.
이중 대장조영술은 바륨을 이용, 항문을 통해 조영제를 넣은 후 늘어나지 않은 직장과 늘어난 대장을 연결한 깔 데기 모양의 이행부위가 보이거나 약을 주입한지 24시간이 지나도록 장 내에 남아 있는 경우 전결장형 무신경절증으로 진단된다.
직장내압검사는 직장 안에 검사 기구를 넣은 후 기구에 달린 풍선을 팽창시키면 직장 내부의 압력이 증가하면서 마치 변이 직장 안에 차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
정상적으로는 직장이 이완되면서 압력이 떨어져야 하지만, 질병이 있다면 이완이 되지 않아 압력이 증가하게 된다.
조직검사는 흡입기를 이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고도 외래나 수술 장에서 간단히 시행할 수 있다.
아세틸콜린이라는 약제를 이용해 결과를 알 수 있으나, 검사자의 숙련도에 따라 위 음성이나 위양성의 가능성이 있다. 면역화학검사 등의 방법을 통해 가장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이 병은 5만 명 중 1명 정도 발생하며 증상은 복부팽만(배가 불러오는 현상), 구토, 배변지리기, 물똥, 변비(3~4일에 한 번씩 왕창 몰아 싸기), 성장장애 등이 어린 영아기 때 나타난다.
이 질환은 배변시키는 큰창자(결장)의 연동운동을 담당하는 신경절이 선천적으로 없어 대변이 통과하지 못해 딱딱하게 시멘트처럼 그대로 굳어지거나 상부 창자(작은창자)에 모아지면서 장이 늘어나 발병하게 돼 선천성 거대결장증 또는 히르슈슈프룽씨병으로도 불린다.
선천성 거대결장증 치료법으론 ‘수술뿐’
이명덕 교수 ‘마틴씨술식’ 적용, ‘5시간 반 대수술’ 성공
|
| 사진1] 몽골 저소득층 환아 볼더린이 서울성모병원에서 나눔 의료사업을 통한 자선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아 주치의 소아외과 이명덕 교수(左)와 할머니 엔크투야(右)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이 병은 선천성 질환이어서 예방법은 없으며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만약 수술을 받지 못하면 대변이 상부 창자에 머무르게 돼 늘어나는 대신 신경절세포가 없는 큰창자 전체가 비게 됨으로써 폐쇄증이 발생한다.
환자는 이 때문에 누렇거나, 푸른 장의 내용물을 토해내거나 기도로 흡인돼 폐렴에 걸리며, 소장은 늘어나 터지면서 복막염에 걸려 사망에 이룰 수 있다.
이 아이를 진단했던 이 교수는 “수술을 쉽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확진이다. 몽골 현지에서 13번의 수술을 받고도 포기할 정도라면,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면서 “태어나 지난 4년간 배변을 못해 고통 속에 고생했을 볼더린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볼더린이 10번 넘는 수술 끝에 복부에서 설사로만 변을 보는 소장루만 남긴 채 ‘수술 부위의 세포가 망가져 더 이상 수술할 수 없다’는 현지 의사의 말을 아이부모로부터 전해 듣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과 이 교수는 볼더린을 보건산업진흥원의 나눔 의료사업을 통한 자선 수술을 해주기로 결정, 치료에 들어갔다. 수술은 장관신결절세포가 있는 장을 절제한 뒤 소장을 항문까지 끌어내려 배변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수술계획을 잡았다.
수술은 1단계와 2단계가 있다.
2단계 수술은 먼저 장관신경절세포가 있는 부위의 장을 배 밖으로 끄집어내 장루를 만드는 것이다.
이 수술은 장염이 있거나 장관신경절세포가 없는 부위의 길이가 길 경우에 장루를 통해 배변하게 함으로써 환자가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이후 환자가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최종교정수술을 시행한다.
수술법은 현재 듀하멜식, 소아베식, 스벤슨식 3가지가 있으며 이중 듀하멜식과 소아베식이 가장 널리 시행되고 있다.
듀하멜식은 장관신경절세포가 없는 장 뒤쪽으로 신경절세포가 있는 장을 덧대어 장을 움직이게 하는 술식이다.
소아베식은 장관신경절세포가 없는 장 안쪽으로 신경절세포가 있는 장을 끄집어내는 수술방법이다.
이 수술들은 복강경의 도움을 받아 시행하며 수술법에 따른 결과의 차이는 없다.
수술자의 선호도에 따라 방법이 결정되는 게 특징이다.
1단계 수술은 장루를 만들지 않고 한 번에 위에 서술된 수술을 시행하는 수술법이며 환자의 상태에 따라 결정한다.
의료진 “장 유착증 심해 큰 장애물 돼 ‘박리술’로 처리”
직장-S결장-항문 수술부위 청소에 ‘상당시간 소요
이 교수는 지난 5월 24일 병든 전 결장을 절제해낸 뒤 소장을 항문에 직접 연결해 변을 보게 하는 마틴씨술식을 적용, 5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큰 수술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 수술은 신생아에겐 부담이 되는 큰 수술이었지만 골반과 창자가 좁아 기술적으로도 어려워 확진이 되면 우선적으로 소장루만 만들어 대변을 외부로 배설하게 함으로써 대수술을 견딜 수 있는 1-3세 정도(몸무게 10-15kg)까지 자라게 한다.
볼더린의 수술은 출혈에 대비해 중심 정맥관을 설치했으며 여러 번 개복수술을 한 탓에 심한 장 유착증이 큰 장애물이 돼 이를 위한 박리술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또 연동운동을 담당하는 신경절이 선천적으로 없는 대장 전체는 장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아 수술 중 S결장 상부를 임시로 막은 뒤 직장-S결장-항문 수술부위 청소에 상당시간이 소요됐다.
이 교수는 “이미 다른 의료기관에서 시행한 수술에 여러 번 실패한데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환자이어서 언어소통 등에 부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정확하게 진단되지 못해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아기가 국내도 아직 있는 질환인 만큼 확진은 수술의 성패를 가르는 필수 요소여서 온 신경을 쓰였다면서 검사결과 중 예상했던 소견들이 하나씩 맞아 떨어져 완치에 확신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수술 성공의 요인으로 오랫동안 쌓은 임상 경험, 최첨단 설비와 애틋한 정성 등의 조화를 꼽았다.
볼더린의 할머니는 “한국의 수준 높은 의술에 감동했으며, 서울성모병원과 대한민국에서 베풀어준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다”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 몽골 소년의 입원기간 동안 총 3,000만원의 치료비용이 발생했으며, 서울성모병원이 치료비용 전액을 지원 했다.
황태곤 원장은 “앞으로 나눔 의료를 통해 주위 어려운 국가에서 고통 받는 환자 발굴, 초청이나 지원에 힘써 지구촌의 아픈 환아 들에게 이웃 사랑 실천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볼더린은 건강을 되찾아 19일 퇴원과 함께 귀국 길에 올랐다.
그는 6개월 뒤 몽골 현지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이번에 볼더린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된 몽골성모진료소는 지난 2004년 가톨릭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김중호 신부가 설립했으며 서울대교구,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가톨릭중앙의료원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볼더린의 아버지도 현지 진료소 관계자의 소개로 KOICA의 임시 운전기사로 취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사최종편집일: 2024-05-17 18:58:28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