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서울성모병원 연구진, 전체 폐암 환자 6% '근본적 치료길' 열린다
담배도 안 피우는데 내게 폐암이라니?
폐암진단을 받은 한 젊은 의사의 간절한 요청과 학술적 열정이 새 폐암 유발 유전자를 세계 최초로 발견하는 성과를 이뤄내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 서정선 교수팀은 22일 “폐암 환자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종류의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다”며 “이 연구결과를 유전자 분야 국제학술지 ‘게놈(genome·유전체) 연구’ 최신호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국내 연구진이 ‘폐암 유전자’를 찾아낸 것은 전 세계에서 처음이다.
이 연구는 젊은 나이에 폐암에 선고를 받은 한 의사의 애절한 요청으로 시작됐다.
서울 한 대학병원에 의사로 근무하는 K모(34)씨는 지난해 우연히 폐암에 걸린 사실을 알았다.
그에게서 폐암이 발견당시 이미 간과 뼈에 전이(轉移)돼 암 병기 1~4기 중 4기였다.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담배는 아예 근처도 가지 않은데다, 폐암에 걸리기에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다.
폐암은 주로 60세 이상 흡연자에서 발생한다.
폐암의 종류도 여성들이 주로 걸리는 ‘폐 선암(腺癌)’이어서 그는 혼란스러웠다
다. 이 암은 전체 폐암의 40%를 차지하며 비(非)흡연자에게서 많이 발병한다.
그는 마침 대학 선배가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기에 특이한 유전자 변이가 아니고서는 자신에게서 폐암 발생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유전자 염기서열 전체를 분석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 변이가 발견됐다.
K씨의 폐암 조직에서 정상 폐에서는 발현되지 않는 ‘RET 암 유전자’가 기존의 ‘KIF5B’라는 유전자와 융합돼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RET 융합 유전자’가 그에게서 폐 선암을 일으킨 것이다.
서울대 연구팀은 같은 형태의 폐암을 보인 두 명의 여성 환자에게서도 똑같은 유전자 변이 를 확인했다.
지금까지 폐암 유발 유전자 변이로는 알크(ALK)·EGFR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새로운 ‘폐암 유전자’가 밝혀지는 순간이 됐다.
이번 연구에 공동 참여한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는 “폐암 유발 유전자를 찾아냈으니 치료에도 희망이 보인다”며 “앞으로 K씨와 같은 폐 선암에 ‘RET 융합유전자’를 억제할 것으로 예상하는 항암제를 투여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앞으로 ‘RET 융합유전자’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약물을 개발할 계획이다.
기존에 발견된 알크(ALK)유전자가 일으키는 폐 선암은 전체 환자의 약 4%인 반면, ‘RET 유전자’ 관련 환자는 이보다 많은 6%로 파악된다.
‘알크 유전자 신약(新藥)’은 다국적제약회사 화이자가 개발해 현재 임상시험 중에 있으며 시판 시 의약품 시장 규모는 50억달러(한화 약 5조8000억원)로 추산된다.
이런 약물을 쓰기 위해서는 폐암 환자가 어떤 유전자 변이를 가졌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폐 선암 환자가 유전자 진단을 받게 된다.
이때 들어가는 비용은 한 사람당 수백 달러가 쓰인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폐암은 매년 161만 명에게서 발생하며, 이중 138만 명이 사망한다.
서 교수는 “이번 발견의 의미는 암 환자를 대상으로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를 효과적으로 찾아내 환자에게 맞는 맞춤형 암 치료를 적용하는 새로운 의료 혁명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기사최종편집일: 2024-04-26 22: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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