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협, “법원 지적 위법사유 보완 않고선 같은 규정 제정할 수 없다”
한의계가 지난 1월 9일 법원이 '천연물 신약'을 한의학적인 치료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현행 고시에 무효판정을 내린 판결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자리가 마련돼 관심을 끌었다.
이 사건은 한의계가 식약처를 상대로 지난 2012년 이 제도를 문제 삼아 무효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하면서 비롯됐다.
한의계가 문제를 제기한 고시는 2012년 5월 22일 개정한 식약처 고시 제2012-22호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 [별표 1] ‘한약(생약)제제의 제출자료’ 중 제Ⅱ항 제1호 다목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사건의 판결은 고시가 무효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면서 “확정되면 식약처는 이를 근거로 삼아 '천연물 신약'으로 품목허가를 하거나 법원이 위법사유로 지적한 내용을 보완하지 않고선 같은 내용의 규정 등을 제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한의협은 처방권보다 한방원리에 따라 개발된 천연물 신약이 한의계 소관의 한약제제라는 선을 분명하게 긋기 위해 제기된 재판이라는 것을 알렸다.
이날 한의협은 “새로운 생약(추출물 등)을 단일제 또는 복합제, 생약제제 또는 한약제제로 개발할 수 있는 범주에서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제한하거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데다 상위 법령에 아무런 근거를 두지 않았다”며 “이를 법원이 위법사유로 꼽았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식약처가 생약제제를 천연물신약의 범위에 포함시키면서 한의학적 치료목적으로 사용해선 안 될 제제로 한정함으로써 한의사의 처방이나 사용, 개발할 권리를 제한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한의계의 설명이다.
당시 한의사들은 “소관의 한약재로 개발된 천연물 신약을 의사에게 처방토록 권한을 부여한 고시에 문제가 있다”며 “이 때문에 한의학계가 새 의약품을 개발할 수 없게 돼 발목을 잡힘으로써 결국 국민들이 한의학을 외면하게 될 것”이란 우려를 나타냈었다.
재판부는 이에 “고시가 한의사 직업수행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데다 상위법령에도 이를 규정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무효를 선고, 한의계의 손을 들어줬다.
김필건 협회장은 “식약처는 재판부에서 지적한 이 사건 고시의 위법사유를 보완, 개정할 의무가 있으며 한의사들은 새로운 고시 제정에 적극 참여, 한의계의 의견을 담아낼 필요가 있다”면서 “20여 년간 천연물신약 정책에서 배재 당해왔지만 한의협은 제대로 대처해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20011~2012년 한약처방이 천연물신약으로 허가되고 급기야 양약의 전유물인 약제 요양급여 목록에까지 등재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밝혔다.
김 협회장은 “비로소 위기의식을 느낀 한의사들이 비대위를 결성하게 됐으며 천연물신약으로 품목허가를 내준 고시가 핵심문제로 떠오르게 됐다”면서 “법률 자문을 통해 가장 현실성 있는 방법으로 무효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 협회장은 “결국 고시의 규정이 무효로 판가름 남으로써 레일라정처럼 한약을 모방한 천연물신약을 품목 허가할 수 없게 됐다”면서 “이번 판결이 어떠한 법적인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한의사들에게 불리하다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생약제제의 범주에 들어간 천연물신약을 한의사가 처방할 수 없게 한 고시가 위법이라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하게 하려는 게 이번재판의 목적이었다는 거다.
김 회장은 “새로운 생약(추출물 등)의 단일제 또는 복합제로 품목허가를 받은 의약품은 한방원리에 따라 개발될 수 있거나 않을 수도 있다. 이를 반드시 한의사만이 처방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되새겨야 할 부분”이라면서 “아스피린과 같이 특정 성분을 추출해 단일 표적에 작용하도록 개발됐다면 한의계가 강조하는 한방원리에서 벗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이와 달리 여러 성분이 결합돼 여러 표적에 작용하도록 한방원리에 따라 개발된 의약품은 한약부분으로 봐야 한다”면서 “이미 개발돼 시판되는 천연물신약부터 한약제제인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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