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전 숨진 태아는 법적으로 독립된 ‘사람'이나 ‘어머니 신체의 일부'도 아니어서 의료진의 실수가 있더라도 과실치사상죄 등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생명경시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두 차례의 제왕절개 경험이 있는 산모 이모(37)씨는 임신 5개월이던 2001년 4월 조산원 서모(여)에게 자연분만을 의뢰하고 상담했다.
같은 해 6월 이씨는 모 대학병원에서 당뇨 증상이 있다며 입원치료를 하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서씨는 “별 문제없다”며 이씨를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7월28일(출산예정일)까지 기다릴 것을 권유했다.
예정일을 2주나 넘겨 태아는 5.2㎏로 성장했고, 결국 산모 이씨는 임신 42주째가 된 8월11일 태아가 자궁 내에서 저산소성 손상으로 사망한 사실을 확인한 뒤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
검찰은 태아 사망 후에야 이씨가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서씨를 산모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기소했고, 항소심에선 태아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추가됐다.
하지만 대법원 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9일 “태아가 아직 ‘사람'이 됐다고 볼 수 없고, 태아의 사망이 임산부에 대한 상해가 된다고도 보기 어려워서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형법상 규칙적인 진통을 동반하면서 분만이 개시된 때가 사람의 시기라고 봄이 타당하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인데 이씨에게 규칙적인 진통이 시작된 바 없어 태아는 아직 업무상 과실치사죄의 대상인 ‘사람'이 됐다고 볼 수 없다”며 “또 태아를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가 임산부 신체 일부를 훼손하거나 이로 인해 임산부의 생리적 기능이 침해됐다고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종교계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순간부터 생명으로 인정한다며 반발하고 나서고 있다.
가톨릭의대 이동익(신부) 교수는 "나라마다 배아 혹은 태아를 생명체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다르지만 '태아는 사람이 아니다'고 단정 짓지 않는다"며 "충격적인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의대 이윤성 법의학 교수는 "형법상의 법 적용 대상으로서의 태아를 사람과 구분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태아가 사람으로 되는 시기에 대한 통설로는 분만 개시의 진통이 있을 때부터 생명을 가진 사람의 시기라는 진통설과 태아 신체의 일부가 모체에서 노출된 시기인 일부노출설, 태아가 모체에게서 완전히 분리된 시기인 전부노출설, 모체로부터 완전 분리되고 독립호흡을 할 때 사람이 된다고 보는 독립호흡설 등이 있다.
우리 법원 판례는 현재까지 형법상으로는 진통설, 유산상속 등 민법상으로는 전부노출설에 따라 태아가 법적으로 사람이 된 시기를 나누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