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타임즈 : 새해는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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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2월30일 19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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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해'
조방훈 대표 "대한민국이 '세계의 구심체가 되는 한해' 기대해본다"

[보건타임즈] 하루만 저물면 2019년은 60년 만에 돌아오는 육십 간지 중 36번째 기해(己亥)년 '황금돼지해'다.
기(己)는 하늘 아래 인간이 사는 곳, 지상 땅을 의미해 동양철학 사상에서 황색을 대표한다.
한 해의 이름을 매기는 갑자기년법(甲子紀年法)상 육십갑자(六十甲子)에서 첫 자 십 천간(10개의 天干)은 각각 우리나라의 전통 오방색을 담고 있다.
황금돼지해는 황색 땅을 가리키는 기(己)가 십이지(12개의 지지) 중 돼지해(亥)를 만나 길운을 찾는다고 해 불러왔다.

십이지 중 돼지는 북두칠성의 두 번째 별 거문성(巨門星)의 상징하는 동물이다.
거문성은 방위(方位)를 괘효(卦爻)에 배치, 길흉을 점치는 구성(九星)의 2번째 별이다.
음정거문원성군, 천선성 또는 천을거문성이라고 하며 하늘의 창고로 복주머니의 원천이 되는 별이다. 이런 이유에서 돼지는 복과 재물을 관장하는 동물인 셈이다.
우리가 설날 복주머니를 차는 이유와 섣달그믐에 팔던 복주머니는 바로 이별의 감응을 받아 복을 받기 위한 것이다.

도교에선 돼지가 가을철에 수확된 저장물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불교에서 돼지 신은 너무 가난해 의복이 없는 이들에게 훌륭한 옷을 얻게 해주는 신두라 또는 비갈라대장이며 시간과 공간을 지휘, 감독하는 아미타불의 화신이다.
 
이렇듯 십 천간과 십이지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통일신라 이래 오늘날까지 맥을 이어온 한민족의 끈질긴 신앙과 사상의 산물로 강력한 호국의 방위신이 돼왔다.
십이지상은 조선 시대 왕과 귀족의 능묘를 비롯해 불교 건조물이나 회화, 공예품, 일상생활 도구에 이르기까지 조각으로 장식돼 어느 나라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독자양식으로 다뤄져 왔으며 오늘날엔 새해의 연운(年運), 새로 태어난 아이의 운명, 결혼상대자의 띠와 궁합 등을 점치는 풍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중 돼지는 예로부터 한 민족에겐 부(富)와 복(福)의 상징으로 여겨 왔다.
돼지는 지신과 풍요의 기원, 돼지꿈, 돼지 그림, 업돼지 등에서 길상으로 재산(財産)이나 복(福)의 근원, 재물신(財物神)의 상징이 돼 어쩌다 꾸는 돼지꿈을 재운(財運)과 행운(幸運)으로 여겨, 기뻐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돼지가 새끼들을 품에 안아 젖을 빨리는 사진을 내걸어 일이 잘되길 빌었다.

돼지꿈으로 ▲ 돼지를 붙잡아 매어 뒀다(호흡이 맞는 사람이 집에 들어온다) ▲ 돼지 목을 누르고 다리를 부러뜨린다(경쟁, 재판에서 이긴다) ▲ 똥통에 빠진 돼지를 막대기로 건진다(재수 있는 꿈이다) ▲ 남의 집돼지를 자기 집으로 끌고 온다(복권당첨, 결혼, 계약 등으로 사업, 생활이 개선) ▲ 돼지를 실어다가 우리에 몰아넣는다(재물이나 돈이 생긴다) ▲ 토실토실한 돼지를 쓰다듬는다.(태몽이며 부자가 될 자식을 낳는다) ▲ 새끼를 낳는 것을 보거나 쓰다듬는다.(태몽이다) ▲ 돼지가 따라오거나 끌어안는다(명예가 올라가거나 입신양명한다) 등을 길몽으로 꼽아왔다.

상점은 새해 첫 돼지 날(上亥日)에 문을 열면 한 해 동안 장사가 잘된다고 여겼으며 돼지혈(穴)에 사별한 조상 묘를 쓰면 부자가 된다고 믿어 왔다.

돼지는 민속적으로 신이(神異)하면서 길한 동물이지만 동시에 탐욕과 게으름 더러움의 대상으로도 비춰졌다.

속담에선 돼지가 대부분 탐욕스러운 데다 더러운 것은 물론 게으르며, 우둔한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돼지는 상서로움과 탐욕스러움의 서로 반대되는 속성을 갖춘, 모순적 등가성(矛盾的 等價性)을 지닌 십이지의 마지막 열두 번째 띠 동물로 등장하곤 한다.
게다가 '돼지 같은 욕심' '돼지는 우리 더러운 줄 모른다', '돼지 멱따는 소리',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등은 탐욕스런 성정(性情)의 사람, 게으른 사람, 미련한 짓거리를 하는 사람, 듣기 싫은 목소리로 크게 노래 부르는 사람, 앞뒤를 가지 않은 저돌적인 사람을 돼지에 빗대 말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 앞뒤 가리지 않는 저돌적(猪突的)이란 단어는 돼지 저(猪)와 갑자기 돌(突)을 합쳐진 글자다.
게다가 대담하며 난폭한 것은 물론 영리하기가 여우 이상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처럼 거친 야생 멧돼지를 가축으로 길들여 사육하기 시작한 시기는 고고학계나 동물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약 7천 년 전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에서 돼지사육은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과 조선 후기 학자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등에 따르면 제주에서 흑돼지를 길렀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울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에 돼지가 등장한 것으로 봐 훨씬 오래됐음을 짐작하게 된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약 7000년 전에 그려진 것이다.

이 그림은 통통한 몸에 목과 다리, 꼬리가 짧은 육지 동물로 그려져 돼지나 멧돼지로 보고 있다. 단 사육하는 돼지인지 아니면 사냥한 멧돼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식용했을 것이란 추정만 할 뿐이다.

황금 돼지해에 얽힌 '한국설화'

고고 자료와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등의 기록에 따르면 석기 시대 동물상(動物相), 조개더미(貝塚), 토우(土偶), 토기(土器) 등 고고 출토 유물에서 돼지의 조상 격인 멧돼지 뼈와 이빨이 다수 출토되거나 기록으로 표현된 것 봐 가축으로 길들여지기 약 7천 년 이전에 야생의 멧돼지가 한반도 전역에 자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유리왕(琉璃王), 산상왕(山上王) 편이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사금갑(射琴匣) 조(條), 고려사(高麗史)의 고려세계(高麗世系) 편에선 돼지를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祭物)임과 동시에 국도(國都)를 정해 주는 신통력(神通力) 있는 동물로 신성시했다.
돼지는 예언자, 길잡이의 구실을 해 명당(明堂)을 점지해 주거나, 왕의 후사(後嗣)를 낳아 줄 왕비를 알려줬으며 왕을 위기에서 모면하게 했다.

돼지는 일찍부터 제전(祭典)의 희생(犧牲)으로 바쳐졌다.
고구려의 교시(郊豕), 삼월 삼일 하늘과 산천의 제사, 12월 납일의 제사, 동제와 각종 굿거리, 고사(告祀)의 제물로 의례 껏 돼지머리가 가장 중요한 '제물'로 모셔졌다.

돼지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낼 때 쓰는 희생물로 매우 신성한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신이(神異)한 예언적 행위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상해일(上亥日)에 궁중에서 젊으면서 지위가 낮은 환관 수백 명을 동원, 횃불을 땅 위로 이리저리 내저으며 "돼지주둥이 지진다"고 소리를 치면서 돌아다녔다.
또, 곡식의 씨를 태워 주머니에 넣어 재신(宰神)이나 근시(近侍)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여인들은 상해일에 두부로 얼굴을 닦으면 돼지의 검은빛과 반대로 희어진다고 믿었다.
여기서 돼지는 지신(地神)을 상징하며 이 행사들은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었다.

'업 돼지'는 돼지가 길상으로 재산이나 복의 근원인 '업', 집안에 수호신(守護神) 또는 재물신(財物神)으로 인식한 전라도 지방의 대표 이야기다.

어느 날, 주인의 눈에만 보이는 돼지 1마리가 집에 들어왔다.
10년 만에 이 집안은 천 석의 갑부가 됐으며 주인의 벼슬도 높아졌다.
어느 날, 돼지가 새끼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 주인은 곧 망할 것이라며 탄식했다.
하지만 돼지들은 엽총 꾼들을 유인해 와 주인집에 하룻밤을 묵게 했다.
마침 그 날 밤에 엽총 꾼들이 몰려온 떼강도들을 물리쳐 주인 집안의 재물을 보호했다.

이러한 돼지설화는 여러 지방에서 유사하게 전해지고 있다.
강원도 금화 군의 '금돼지와 최치원', 전북 순창군의 '원님 마누라를 잡아가는 금돼지' '금돼지 자손' 등은 모두 비슷한 이야기다.

신라 때 호주라는 어느 고을에 갑자기 금빛을 한 돼지가 나타나 사람을 납치해 갔다.
이 금돼지는 몇 천 년을 묶은 것이어서 온갖 조화를 부리며 사람으로 변해 고을 사또(원님)의 부인까지 끌고 갔다.
군졸을 풀어 산속을 샅샅이 뒤져보니 동굴 속에 금돼지가 고을 원님의 아내를 잡아가 시녀로 부리고 있었다. 부인을 구할 길 없던 원님은 함께 잡혀 온 여인의 재치로 금돼지가 사슴 가죽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말을 들은 사또는 직인 도장의 쌈지 끈을 풀어서 '네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슴가죽이다'고 위협해 금돼지를 없앤 뒤 부인과 동굴 속에 함께 잡혀 온 여인들을 구해냈다.
이 일이 있은 뒤 수개월 지나 원님의 부인에게 태기가 나타났다.
금돼지 새끼를 밴 부인은 몇 번 죽으로 했으나 사또의 간곡한 위안과 만류로 만삭이 돼 열 달 후 옥동자를 낳았다.
이 아이가 신라의 최고의 문장가 고운 최치원(崔致遠)이라는 설화다.
후세사람들은 경주 최씨(慶州崔氏)는 금 돼지의 자손이라고 일컬었다.

이 이야기는 보은군 산외면 대원리 여동골 마을 뒷산 검단산(높이 767m)에 얽힌 전설이다.
검단산의 검은 신, 단은 제단을 뜻을 나타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제단이 있는 산이란 의미다.
돼지와 얽힌 지명이 남아 있는 지역은 서울 외곽의 경기도 광주시 검단산을 비롯해 전국에 걸쳐 총 112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전남이 27개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경남 21개, 전북 16개, 경북 13개 등의 순이었다.

과거 우리나라 역사 속에 기해년 황금돼지해엔 어떤 사건이 있었을까(?)
서기 939년엔 백두산의 화산이 대폭발해, 발해(渤海)가 멸망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서기 1179년엔 청년 장군 경대승이 거병을 해 전횡을 휘두르던 정중부 부자와 사위 송유인 등을 제거, 새로운 청주 경씨 중심의 무신정권을 수립했다.

서기 1359년에는 홍건적이 고려에 침입한 사건이 발생했으며 같은 해 왜구까지 침략하는 외환(外患)이 터졌다.
서기 1419년 6월엔 조선 세종대왕이 이종무 장군을 파견, 대마도를 정벌케 했다.
이것이 이른바 우리 역사서에 남아 있는 기해동정(己亥東征)이다.

서기 1479년에는 조선에서 중전 윤씨(연산군의 생모)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남편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성종의 뺨을 때려 생채기를 내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 사건은 훗날 갑자사화의 시발점이 됐다.
서기 1839년엔 천주교의 기해박해(己亥迫害)가 발생, 조선의 수많은 천주 교도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를 가야 했다.

새해 기해(己亥)년엔 국운이 상승, 대한민국이 세계의 구심체가 되는 한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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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방훈 (bktimes@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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