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가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통합 및 재구조화를 전제로, ‘그대로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안을 만들어 놓고 20개월 넘게 ‘쉬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 박은수 의원(보건복지위, 비례대표)이 입수,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말 보건복지부는 현행 9%인 보험료율은 그대로 유지하고 급여율만 40%에서 최대 25%까지 낮아지는 방식의 네 가지 연금개혁 방안을 만들어 각각의 방안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장관에게 구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대로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안이 정부 차원에서 심각하게 검토됐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는 전재희 장관 직속으로 국민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고, 그 산하에 소위원회를 만들어 2008년 4월부터 12월까지 아홉 차례에 걸친 회의를 열고 여기서 네 가지 연금개혁 방안과 각 안에 따른 세부적인 내용들을 검토해 왔다.
소위원회는 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인 진영곤 당시 사회복지정책실장이 정부 측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했고, 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인 육동한 당시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등 정부 측 위원 3명과 민간위원 7명 등 민관합동으로 운영됐다.
소위원회는 최종 보고서에서 네 가지 방안을 만들어 검토했는데, 이 중 현행 국민연금은 그대로 유지하고, 기초노령연금법에 따른 기초노령연금액을 5%에서 10%로 인상하는 2-3안을 제외한 다른 세 가지 안 모두 “급여율을 사실상 10% 정도 축소하는 안”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1안의 경우, 합계급여율(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 급여율의 합산)을 50%로 명시하고 있으나, 기초노령연금의 대상범위가 70%에서 40%로 낮아져 기초노령연금 수급권자는 기초노령연금만, 국민연금 수급권자는 국민연금만 실제로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결국 급여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어 ‘그대로 내고, 적게 받는 돈’ 형태라는 점에서 충격적 개악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2-3안의 경우에도 현행 1:1인 균등:비례 비율을 1.5:2.5로 개악, 평균소득이 중간 이하인 저소득자에게 훨씬 불리한 방식으로 개악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은수 의원은 “국민연금 평균 가입기간에 따른 실질 소득대체율이 현재 20% 안팎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기초노령연금 10%와 국민연금 급여율 40%는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며, “정부는 기초노령연금액을 10%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기 위해 당장 내년부터 연금액을 현행 5%에서 6%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한다 해도 2028년 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규모는 2.4%에 불과하기 때문에 2000년 기준 OECD 평균 공적연금 지출규모인 7.2%에도 한참 모자란다는 설명이다.
박은수 의원은 또, “MB정부가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통합 및 재구조화를 명분으로 국민들이 받는 연금을 축소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즉, 현행 기초노령연금법에는 향후 국회 연금제도개선위원회에서 기초노령연금액의 단계적 인상 및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의 통합만을 다루도록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을 축소하기’ 위해 ‘재구조화’라는 명칭도 포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올해 7월에 게재된 한 언론기사에 따르면, 복지부는 이런 연금개혁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기초노령연금 선정기준 변경과 국민연금공단의 기초노령연금센터를 이관 등을 검토해 온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현행 기초노령연금법 부칙 제4조의2에는 기초노령연금액의 단계적 인상과 국민연금과의 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008년 1월부터 국회에 연금제도개선위원회를 운영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국회 연금제도개선특위의 논의나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복지부가 이런 일들을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박은수 의원의 이번 의혹 제기는 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실제로 정부는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등을 국민연금과 통합해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국민연금 개혁을 두고 2006, 7년과 같은 뜨거운 국민적 논란이 또 다시 불거질 개연성도 있다.
국민연금, 기초노령연금과 관련해서는 곳곳에 휘발성 높은 이슈들이 뇌관처럼 버티고 있다. 올해 300조원을 돌파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는 국민연금기금이 2060년이면 소진된다는 다소 먼 미래의 문제에서부터, 현재 9만원(국민연금 가입자의 월평균 소득액의 5%)인 기초노령연금액을 2028년까지 18만원으로 두 배 이상 높여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다양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 국민연금 노조 등에서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지난 3년간 빼앗긴 기초노령연금액이 올해 4월 기준으로 1인당 매월 13,000원씩 총 15만원이 넘는다고 지적해 왔다. 총액으로 따지면 2010년만 5,850억원, 지난 3년 간 무려 1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 노인들에게 지급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박은수 의원은 “이처럼 뜨거운 국민적 논란이 잠재해 있는 사안에 대해 비밀리에 보고서를 만들고, 음험하게 이를 실행에 옮기려는 기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만큼 복지부 장관이 떳떳하게 해명과 사과를 하고, 국회에 연금제도개선특위를 조속히 구성해서 현 세대와 미래세대의 노후문제를 지금 당장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민주당도 ‘연금개혁’ 문제를 정기국회 중점과제로 선정, 기초노령연금의 단계적 인상 등을 추진하기 위해 국회 연금제도 개선특위 설치를 추진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기사최종편집일: 2024-04-23 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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