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타임즈 : 대장암의 예방과 치료

인하대병원 외과 최선근 교수
인하대병원 외과 최선근 교수

예로부터 오복(五福) 중의 으뜸인 건강의 기본요소로서 쾌식(快食), 쾌면(快眠), 쾌변(快便)을 삼쾌(三快)라 하여 중요시 여겨왔다. 이는 서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쾌식, 쾌면 그리고 쾌변은 건강의 세 가지 표시다(A good appetite, sound sleep, and regular motions are the three signs of good health).”라는 말로써 강조돼왔고 그 중에서도 쾌변은 육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서 가장 중요한 건강의 지표로 삼았다. 오죽하면 “배설의 기쁨”이라는 말이 다 있을까?

평소에 장이 좋지 않거나 심한 변비로 인해 배설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장내에 배설물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서 발암물질 같은 장내독소가 체내에 흡수될 기회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므로 암의 발생이 증가되기도 한다. 따라서 육류 중심의 서구화된 식습관, 이로 인한 만성변비, 또한 폭음과 폭식, 흡연, 수면부족과 만성피로, 스트레스 등이 일상화되어 삼쾌가 무너지기 시작한 현대 한국인들에게 대장암의 발생율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증가하게 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筆者)에게는 올해로 구순(九順)을 훌쩍 넘기신 외조모님이 계시다. 그분께서는 넉넉지 않았던 시절 배화고녀를 다니시며 테니스 선수까지 하셨던 신여성이셨고, 1세기에 가까운 긴 세월동안 잔병치레 없이 늘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젊게 살아오신 분이다. 필자가 기억이 남아있는 어린 시절부터 사십 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항상 저를 보시면 “얘야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거라.”는 말을 잊지 않으신다. 그분 나름대로의 건강비법인 셈이다. 이제는 대장항문학을 전공으로 하는 외과의사가 되어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필자 역시 환자들에게 진료가 끝나갈 즈음이면 외조모님의 이 말을 잊지 않고 들려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장암은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격히 증가되고 있는 암중 하나이다. 보고에 따르면 대장암은 남녀 공히 4위의 발생빈도를 나타내는 비교적 흔한 암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대장암이 그 명성(?)에 걸맞게 대단한 증상을 유발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말기가 아니라면 대장암을 의심할 수 있는 특징적인 증상은 없다.

2~3년 전 필자에게 처음 찾아온 “ㅂ”씨. 이분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50대 중반의 평범한 가장이자 그저 가족을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소시민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은 부쩍 잔무가 많아진 6개월 전부터이다. 업무의 성격 상 새벽퇴근이 잦고, 이에 따라 식습관이 불규칙해 진대다가 숙면을 하지 못하고, 또한 언제부터인가 과중한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핑계로 폭음하는 횟수가 많아진 터였다. 처음엔 예전에 앓았던 치질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저 그런 대수롭지 않은 증상들. 혈변, 잔변감, 설사와 변비의 반복 등이 전부인데다가 그런 증상들은 치질을 앓았을 때에도 이미 경험하였던 것이기에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나는 건강하다는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지금껏 살아오면서 변변한 종합검진 한번 해 본적이 없던 그였다. 우연히 읽은 신문의 건강컬럼에 실린 특집기사만 아니었더라면 사는 게 바빠 감히 병원에 오겠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병원에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장암의 증상은 그 외에도 체중감소 등 일반적인 암 증상과 함께 발생부위나 진행정도에 따른 증상이 있을 수 있다. 항문에 가까운 하행결장이나 에스자결장 또는 직장에 암이 발생하면 혈변이나 배변장애, 변이 가늘어지거나 잔변감, 드물게는 복통이 있을 수 있고 항문에서 먼 상행결장에 발생할 경우 미세한 혈변이 장기간 지속되어 어지러움, 만성피로, 호흡곤란 등의 빈혈증상이 있기도 한다. 그 밖에 암이 오랫동안 진행됐을 경우는 대장을 틀어막아 방구가 나오지 않거나 변을 못 보는 등의 장폐색 증상이 있기도 하며 심한 경우에는 간이나 폐에 전이되어 이로 인한 증상을 먼저 느끼기도 한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ㅂ”씨도 역시 암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느끼고 필자에게 온지라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평소 같으면 부위가 남에게 보여주기가 민망하여 검사를 꺼렸을 대장내시경 검사를 자진해서 원하고 있었다. 혈변이 있는 중년의 환자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서 병원을 찾게 된다. 더군다나 정기적으로 종합검진을 해왔다 하더라도 대장내시경은 일반적인 검사항목에서 빠져있는 경우가 흔하여 간과되기가 일수다.

40세 이상의 성인에서 2-3주 이상의 배변습관에 변화가 있거나 배변 시 점액이나 피가 나오는 경우, 또는 치질이나 장염으로 진단 후 6개월 이상 치료를 하여도 완치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반드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대장증상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변 잠혈검사, 직장수지검사, 대장내시경 검사는 필수적이다. 그밖에 대장조영술이나 복부초음파, 복부전산화단층촬영, 또는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검사 등을 통해 암의 위치를 확인하고 진행정도나 전이여부를 알아볼 수 있다. “ㅂ”씨의 경우는 직장수지검사만으로도 항문연에서 5 cm 떨어진 직장에서 종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추가적인 검사를 통해서 직장암을 확진하고 다른 장기로의 전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술을 결정하였다.

대장암치료에 있어서 수술은 가장 근본이 되는 치료임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최근에는 암으로 발전 가능한 용종이나 조기대장암의 경우 수술을 하지 않고 내시경으로 진단과 동시에 제거하는 내시경적 치료(내시경적 점막절제술)를 시행하기도 하며 조기 하부직장암의 경우는 수술을 하더라도 개복을 하지 않고 항문을 통하여 국소절제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몇 년 전만하더라도 “ㅂ”씨처럼 하부직장에서 진행된 암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선택의 여지없이 “변주머니”로 통칭되는 인공항문을 달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필자도 상당수 환자들이 치료조차 포기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아왔으나 최근에는 수술기법과 기구의 발달로 인해 항문을 제거하고 인공항문을 만드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 밖에 최근에는 조기대장암 뿐만 아니라 일부 진행성 대장암에 있어서도 개복 자체를 않고 복강경만으로 대장을 절제하는 복강경 대장수술이 도입되어 시도되고 있다. “ㅂ”씨 역시 복강경을 이용하여 개복하지 않고 암이 있는 직장부위와 주위 림프절을 제거한 후 항문을 유지하는 복강경 대장수술로 안전하게 치료되었으며 현재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수술 후에는 진행정도에 따라 항암제 치료를 받거나 이와 더불어 직장암의 경우 방사선요법을 병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신약들의 개발로 인해 항암치료에 따른 부작용은 줄이면서도 그 치료성적은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

대장암 역시 다른 여타 암들과 유사하게 예방과 조기진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아서, 조기대장암의 경우는 수술만으로도 5년 생존율이 90%에 이를 정도로 치료성적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장암의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동물성 지방질과 육류의 섭취가 늘어날수록 발생율이 증가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식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동물성 지방질의 과다한 섭취를 피하고 신선한 채소류와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남녀 모두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발생율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므로 만 40세 이상이 되면 매년 변 잠혈검사나 직장수지검사와 같은 직장검사를 받아야 하며 매 3-5년에 한번 씩은 대장내시경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그 밖에 약 5-15%의 환자에서 유전적인 요인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가족성 대장용종증, 특발성 비특이성 궤양성 대장염, 대장 및 직장의 용종, 특히 이중에서도 융모성 선종인 경우 암으로 변화할 수 있는 병으로 잘 알려져 있으므로 이 경우에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주기적인 검사를 받는 것이 대장암의 예방과 조기진단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장은 “제2의 뇌”라고 불릴 만큼 민감하고 섬세한 장기이다. 우리 몸의 영양소 대부분이 소장에서 흡수되며 특히 대장으로는 인체 안의 독소들 대부분이 집결된다. 따라서 장을 어떻게 관리하고 지키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한다”는 건강의 기본요소인 삼쾌를 달성하는 것과 연관이 되는 셈이다. 필자는 여러분 모두가 쾌변을 통해 반드시 삼쾌를 이루어서 육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의 건강도 누리시기를 기대해 본다.